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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가 졸업한 학교 관리자
2009.10.24 19:34
일본에서 본격적인 이과 출신 총리 탄생은 처음이다. 일본의 역대 총리 중 다나카 가쿠에이는 이과계전문학교인 중앙공학교를 졸업했으며* 아소 다로 현 총리의 장인인 스즈키 젠코는 현 도쿄해양대의 전신인 ‘수산강습소’를 나왔다. 박사학위 소지자가 총리에 오르는 것도 하토야마 대표가 처음이다.

이 기사는 신문기사의 한 부분이다.

다나카 가쿠에이는 니이가타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으로 올라와서 이 학교에 다녔고 그 후 토목* 건축 등의 일을 하다가 사업에 성공하면서 이 학교의 교장직을 봉직한 때도 있었다.

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일본열도 개조론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일본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.

또 하나 어느 전문지에 실린 다나카 가쿠에이에 대한 글을 소개한다.


다나카 가쿠에이(田中角榮)
[1918. 5. 4 ~ 1993. 12. 16]
재임기간 : 1972. 7. 7 - 74. 12. 9(64*65대)

- 저학력으로 수상의 자리까지 올라 일명 <현대판 도요토미 히데요시>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. 일본 열도 개조론과 더불어 도로* 항만* 공항의 정비를 실시하여 전후의 일본 사회 기반 정비에 중요한 초석을 다졌다. 1972년에는 중-일 국교를 회복하였다. 총리 사임 후 록히드 사건에 연루되어 복역하였다. 장녀인 다나카 마키코는 중의원 의원이다.

유년기* 청년기와 정계 입문까지
다나카 가쿠에이는 1918년 니가타현 카리와군 후타다 마을에서 아버지 田中角次* 어머니 후메의 차남으로 태어났다. 아버지는 가난한 우마상(牛馬商)으로 집안 형편은 극빈하였다. 게다가 어렸을 적에는 말더듬이라서* 浪花節이라고 하는 메이지 시대 일본 고유의 창을 연습해서 교정했다고 한다.
그의 유년 시절에 관동대지진으로 도쿄에서 그가 살고 있는 니가타로 많은 사람들이 도망쳐 온 일이 있었다. 그 때 도망쳐 온 도쿄 사람들이 쌀과 된장을 마구 사재기하는 것을 보고 날마다 고된 농사일로 힘들어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어린 마음에도 괴로웠다고 한다. 이 때부터 “수탈하는 도쿄* 수탈당하는 니가타”라고 하는 구도가 훗날 수상 재임 이후 지역간 격차시정이라는 정책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.

좌측이 다나카 마키코(田中眞紀子)
상경하여 중앙공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바로 실업계외 뛰어든 후 1943년에는 다나카 토건공업을 설립 후 이화학 연구소 공업 등의 일로 급성장했다. 이후 구 민정당의 거물인 오아사 다다오의 권유로 진보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. 이 때 중의원의원 총선거에 입후보하였지만 낙방하고* 다음 해 44년에 신헌법 아래 첫 총선거에서 민주당으로 입후보* 처음 당선되어 국토계획위원회 당임위원이 되어 정치가로서의 구체적 활동을 개시했다. 같은 해 1월 14일 장녀 다나카 마키코(田中眞紀子)가 탄생하였다. 마키코는 이후 성장하여 병약한 모친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게 되어 아버지의 정치 인생을 계승하게 된다.“일란성 부녀”라고 불릴 정도로 아버지 다나카와는 외모와 성격 등 많은 점이 닮았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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